기말고사 기간입니다.
바꿔 말하면 잉여해지는 기간이죠(...)
원래 시험기간에는 게임도 재밌어지고 글도 잘 써지고 포스팅도 하고 싶어지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
아무튼, 간만의 포스팅입니다. 자주 못 뵈서 죄송합니다. 이쪽은 소설 관련된 것만 올리려다 보니까 할 말이 많지가 않네요.
알고들 계시겠지만, '류은가람'은 필명입니다.
......아니 본명으로 알고 계신 분들도 상당히 계시더군요.
하지만 필명입니다. 가짜라고!
본명은 지극히 평범하고 아담한(?) 이름입니다. 굳이 필명과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성별이 헷갈린다는 것 정도 뿐이군요.
아무튼 각설하고 필명을 이렇게 짓게 된 사연을 이번 포스팅에서 말해볼까 합니다.
그때가 아마 2009년 2월 하순이었을 겁니다. 당시 저는 3월 1일로 예정된 데뷔작 출간에 맞춰 이런 저런 교정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죄송합니다. 거짓말입니다. 같이 수능 본 친구들 중에서 재수 결정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헌데 이 때 담당님 (당시에는 요괴K님) 께서 '오늘 저녁 6시까지 필명을 확정해달라' 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 전의 닉네임은 '작가'였습니다. 딱히 별 의미는 없고 꿈이 작가여서 닉네임도 이랬어요. 2005년 조아라 첫 연재 시절부터 이 닉이었죠. 아, 난장종합 운영하시는 그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손그림으로 유명한 그분과도 아무런 상관 없구요. 작가라는 닉네임 쓰는 사람 한국에만 100명도 넘을 겁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해서 이 통보를 듣기 전에, 처음 필명 건을 들었을 때 저는
"필명 그냥 '작가'라고 해도 돼요?"
라고 철없게 물었고, 담당님께서는
뭐 병신아?
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표정으로 (과장되었습니다) 저를 온화하게 바라보시며
"안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럼 어머니 성 붙여서 '류작가'라고 해도 돼요?"
라고 또 늘어붙으며 물었고, 담당님께서는
이놈 정신이 나갔나
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표정으로 (무척 과장되었습니다) 저를 온화하게 바라보시며
"아 안된다고요"
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 약 일주일 정도 필명에 대한 고민을 하던 와중, 최후 통첩이 와버린 겁니다.
오후 6시까지라. 집에 돌아온 저는 또 앉아서 고뇌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본명은 제외했습니다. 이름이 같으신 분께서 먼저 시드에서 책을 내셨기에 이미지가 겹칠 수 있다는 게 대외적인 이유였지만, 사실은 그냥 필명이라는 것에 뭔가 환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저는 그때 아직 '작가가 꿈인 고딩'이었거든요.
그리고 다음 조건으로, 저는 '실제 이름 같은' 필명을 짓고 싶었습니다. 이것도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그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뽐뿌라는 게 원래 그런 거죠.
해서 일단 성으로 어머니의 성인 '류' 씨를 골랐습니다. 柳. 음, 좋은 성이다. 성은 이쁘네.
그런데 이름은?
이때부터 제가 5시간이 넘도록 괜찮은 이름을 찾아 온 인터넷을 뒤지고 다녔다는 걸 고백하고자 합니다(...). 멋있는 이름을 짓고 싶어서? 아니요. 진짜 정말로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안 보여서 그랬습니다.
한국식 좋은 이름들을 뒤지다가 안 되자 미국, 러시아, 심지어는 몽골 쪽까지 뒤졌지만 안 되는 게 그런다고 될 리가 있습니까. 결국 시간은 흘러흘러 5시 50분이 되기에 이릅니다.
목으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갑디다.
그때 마침 시드 홈페이지에 누군가가 올려놓은 '예쁜 순우리말 모음' 이라는 게시물이 눈에 띄더군요.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스크롤을 죽죽 내리면서 거기 있는 모든 낱말들 앞에다가 '류'를 붙여봤습니다. 그런데 진짜 어울리는 게 단 하나도 없어요! 뭐가 이래! 류씨는 저주받은 성씨인가! 아 어머니 죄송 뭐 이러면서 좌절하려는 찰나에 '은가람'이라는 단어가 눈에 스치고
'류은가람'
그 말의 발음이, 매우 평범하게 되더군요.
그 평범함이라는 것은, 굳이 묘사해보자면 그런 것이었습니다. 2010년이 된 직후에 부르는 2009년 같은 느낌. 친숙한데 낯설고, 가까운데 묘하게 먼, 손에 잡힐 듯한데 정작 엄청 멀리 있는, 그런 '평범한 거리감'의 발음이었습니다.
저는 어째서인지 달갑잖게 입맛을 다시면서 그 단어의 뜻을 보았습니다.
은가람 ㅣ 천천히 흐르는 강을 뜻하는 순 우리말
은색 강도 아니고, 그냥 느린 강이랍니다. 참 싱거운 뜻입니다. 게다가 이러면 네 글자 이름이잖아요. 어째 등줄기 아래쪽이 듣는 것만으로도 근질근질 해지는 게 기분이 안 좋은 쪽으로 묘합니다. 이것보다는 뭔가 좀 더 멋지고 강렬한 것이 있을 것 같아서 스크롤을 몇 번 더 내리던 저는 문득 시계를 봅니다.
5시 55분.
그리고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제 글만큼이나 오글거리는 이 필명은, 마감에 등이 떠밀렸다는 좋은 핑계 아래 그렇게 제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동안 오프라인에서 저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손발이 문드러지는 감각을 저는 겨우겨우 버텨내야 했습니다. (...)
저 네 글자 오프라인에서 들으면요? 장난 아닙니다. 레알 농담 안 하고 오장육부가 퇴갤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류.은.가.람......아니 뭔 이름이 이래? 하면서 부끄러워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정해놓고 말이죠. 웃긴 일입니다만.
지금은요?
나이를 쪼끔이나마 더 먹은 덕인지, 그동안 너무 들어 무뎌져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2년이 지난 지금은 무덤덤합니다.
마치 진짜 이름처럼요.
......아니 그건 아닌 것 같고. 진짜 이름이 되어가는 것처럼.
부끄럽기 짝이 없는 제 글을 어느새 별 부끄러움 없이 남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게 된 것처럼,
굉장히 오글거리는 이름이지만, 이젠 아무렇지 않게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당하게는 못합니다. 네. 솔직하게 말하면 그래요. 아직도 손발이 근질근질하단 말이야!
뭐어,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이 필명이 탄생했습니다.
꽤 많은 분들이 작명비화를 궁금해 하셔서요. 이렇게 밝혀 봅니다.
이상 시험기간 뻘 포스팅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차기작 관련 소식을 들고 올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사실 이제 쓰기만 하면 되는 단계예요 하하
아, 마감......
Bonus
제 출간작에 두 번 출연한 어더의 경우, 많은 분들이 이름을 'Author'라고 유추해주셨는데요.
사실은 'A. THE.' 입니다.
......
밝히는 김에 덩달아 알려 봅니다.